(성인 유대철의 부친)
성 인 유 대 철 (베 드 로)
1826 - 1839 (14세)
10월31일, 포청에서 교수형

소년 성인 유 대철(劉 大喆)은
성인 유 진길(1791 - 1839 아오스딩(49세)역관, 학자,
9월22일, 서소문밖에서 참수)의
아들이며, 서울의 유명한 역관(譯官)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유순하고 인정이 많았다.
어린 소년으로서 불성실한 어머니를 따르지 아니하고 신심 깊은 아버지를 따라
천주교를 받아들여 놀라운 신심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그의 어머니와 누이는 하느님 나라를 몹시 미워하는 적들이어서 베드로를
자기들과 같은 미신을 믿게 하려고 설득도하고 위협도 해가며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베드로는 지극한 항구심으로 저항하고 자기는 참 신앙을
저 버릴 수 없음을 말과 행동으로 표시하자 그들은 분노하여 베드로를 혹독하게
박해하고 지극히 거친 말로 괴롭혔다.
그러나 효성 깊은 아들은 박해하는 어머니를 사랑과 공경으로 존중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혹독한 말에도 부드러운 말로 응답하며 어머니와 누이의 무지를
효성심으로 애통해하였다.
하느님의 법률을 준수한 베드로는 종교 교리를 부지런히 익히고 성사로
자신을 튼튼하게 강화하였다.
하느님께 대한 더 큰 사랑으로 불타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를 흘릴 원의를 가지고 있었다.
박해가 일어나자 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어 순교하였을 때
그들의 영광을 부러워하여 경쟁이나 하듯이 숨가쁘게 헐떡거리며 말하였고
자기도 그들과 동참하게 되기를 원하였다.
어느날 하느님을 위하여 피를 흘릴 원의가 간절하여 판결 법정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판관이 물어서 그가 천주교 신자임을 알게 되자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다음날 베드로를 감옥에서 끌어내 하느님을 저 버리고 다른 신자들을 배신하도록
말로 타이르고 위협으로 겁주기를 노력하였지만
베드로가 하느님을 항구하게 고백하는 것을 보자 판관이 분노하여 매를 때리고
여러 가지 고문으로 괴롭히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용맹한 신앙 증거자는 채찍질과 여러 가지 고문을 당하였지만
고문의 폭력으로도, 가혹한 말이나 유순한 말로도 그의 결심을 돌릴 수는 없었다.
베드로를 때려 그 몸을 찢고 실신시켜 다시 협소하고 더 할 수 없이 불결하고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감옥으로 보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어두컴컴한 감옥에 감금되어 포졸들한테 지극히 가혹하고
잔인하게 매를 맞았다.
포졸들은 상처 위에 상처를 입혀가면서 배교의 말 한마디만 하고 감옥에서 나가라고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충실한 용사는 이 모든 고문을 강인한 정신과
쾌활한 얼굴로 참아 받으면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말로 종교의 진리를 옹호하였다.
포졸 한 명이 다가와서 달콤한 말로 판관의 말에 순종하여 죽음을
피하도록 권고하였다.
베드로가 그에게
"왜 그러한 의견을 저에게 제안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이 말을 듣고 포졸이
"너는 정말 진실을 말하는구나. 대철아, 너에게 한마디 청한다.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도록 해다오. 만일 나를 잠깐 도와주면 나는 구원받을 수 있겠다."라고 하였다.
그는 엄청나게 가혹한 형벌을 받으면서도 감옥에 갇혀 있는 동료 신자들을
격려하였고 배교자들에게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되돌아오도록 신심 깊은 말로
설득시키려 노력하였다.
베드로는 감옥에서 끌려나와 다시 형벌을 당하였다.
6백대 이상의 매를 맞고 40대의 치도곤을 맞았을 때 그의 육신은 마비되고 갈기갈기 찢어졌으나
그의 영혼은 더욱 굳세고 더욱 열럴히 불타 올라 마음속의 환희를 밖으로 표현하였다.
이 모든 형벌을 극복하고 베드로는 14세의 나이로 1839년 음력 9월 25일 목이 졸려
하느님께 올라갔다 - - -
성 인 유 진 길 (아우구스티노)
유 아우구스티노 용선(劉進吉), 관장 - 성인 유대철(베드로)의 부친
유 아우구스티노는 고귀한 집안에서 높은 벼슬을 한 부모한테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학문을 공부하고 재능이 뛰어나고 근면하여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학자의 영예를 받았다.
관장의 벼슬을 받은 후에도 재산과 명예를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계속 학문에 열중하였다.
이윽고 세상 만물의 구조와 우주의 존재를 깊이 고찰하여 세상 만물의 창조주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이치를 스스로 깨달았다.
그리하여 창조주 하느님을 탐구하는 데 10년 이상 노력하여 자기가 찾아 볼 수 있는
모든 서적을 탐독하였다.
어느날 많은 이들이 천주교라는 종교 때문에 피를 흘린다는 말을 듣고
그 종교를 믿는 이들을 만나보고는 과연 그 종교가 진정한 것인지 들어보고 싶은 욕망이
간절하여 천주교인들을 찾기 시작하였다.
한 번은 우연히 길을 가다가 작은 종이쪽지를 보게 되었다.
그 쪽지를 보니까 사람의 영혼에 관하여 언급되어 있었다.
그래서 여러 조각으로 찢어진 쪽지를 맞추어 보니까 천주교에 대한 글이 되었다.
그래서 하느님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 더욱 불타 올라서 천주교 신자들을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찾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천주교 신자를 찾아내어 얼마 동안 그 교리를 들어본 후 즉시 자기도 신앙을 받아들였다.
1년 후 통역관의 직무를 받아 사신들을 수행하여 북경에 가게 되었다.
그는 북경에서 세례의 샘물로 죄를 씻었다.
그런 다음에 조정으로부터 여러 차례 북경에 파견되었다.
북경에 갈 때마다 우리 교회의 업무를 심혈을 기울여 보살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재산이 점차 줄어들고 또한 남편이 명예와 높은 벼슬을 얻기 위하여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대단히 화가 나서 남편을 여러 해 동안 집안일로 박해하였고
천주교와 천주교신자들을 모욕하고 모독하는 일에 골몰하였다.
아우구스티노는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을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견디어 냈고
자주 묵상과 기도에 열중하고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진리를 가르쳤다.
기해년에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광포해지자 모든 것을 하느니의 섭리에 의탁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결과를 기다렸다.
음력 6월경에 포졸들이 아우구스티노를 체포하도록 파견되었다.
이 소식이 아우구스티노의 외교인 친척들의 귀에 들어가자 모두가 아우구스티노에게 몰려와서
눈물과 탄식으로 아우구스티노를 붙들고 간청하였다.
배교의 말 한마디만 하여 아우구스티노 자신뿐 아니라 자기네들도 망하지 않게
구해 달라고 애걸하였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는 그 모든 청을 물리치고 용감한 정신으로 판관에게 끌려갔다.
판관이 그를 예의있게 영접하고 기교를 다하여 간청도 하고 권고도하면서
하느님을 저 버리도록 유도하였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는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형벌을 받으러 끌려갔다.
판관이 " 누구로부터 조정에서 금하는 미신을 배웠느냐?
몇 명에게 천주교를 가르쳤느냐?
또 천주교 책을 몇 권이나 가지고 있느냐? "고 심문하였다.
아우구스티노는 " 전라도 출신인 이 바오로 순교자로부터 천주교를 배워서
저는 신자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설교한 것으로 말하면 저의 아내조차 회유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그 외의 다른 책들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판관은 "네가 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지만, 네가 가지고 있는 만큼 많은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였다.
판관은 이 말을 하고는 모질 게 고문하도록 명하였다.
그 다음 서양인 사제들이 어떻게 해서 조선으로 오게 되었는지 알아내려고 하였다.
아우구스티노는 "신부님들이 조선에 온 목적은 하느님의 영광을 더 크게 하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며 섬김으로써 영혼을 구하도록 가르치고 그렇게 함으로써
죽은 후 영원한 지옥벌을 면하고 천당에서 무한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처럼 거룩한 가르침을 설교한다면서 어찌하여 그처럼 사악한 자들로 고발되느냐?"
(아우구스티노는) "만일 그들이 가짜들이라면 무슨 배짱으로 감히 남에게 성덕을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많은 덕행과 순결로 단련한 다음에
다른 나라에 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성덕을 설교합니다.만일 그들이 높은 명예나 부귀나 추악한
욕망 때문에 이런 것을 보여준다면, 어떻게 다른 고장보다 더 유명한 지역에 사는
유럽인들이 더 부유하고 더 애착이 가는 조국을 떠나서 거의 90만 리나 멀리
떨어진 이 낯선 나라에 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왔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은 자기 조국으로부터 재물을 가져다가 사용하고 있으니 어떻게 재물 때문에 우리나라에 왔다고
고발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그들은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들로서 평생 동정을 지킬 것을 맹세로 서원하였고,
육신의 순결을 지켜 거룩한 품위에 오른 분들입니다.
어떻게 추악한 욕망을 탐하는 자들로 고발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판관이 "그들을 누가 조선으로 인도하였느냐?"라고 물었다.
아우구스티노는 "제가 그들을 인도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후 두 신부님을 배반하도록 잔인하게 고문하였으나 아우구스티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지극히 공경하올 주교님의 충고를 받고 조선 안에 신부님 두분이 계시다는 것만
실토하였다.(주교님이 이렇게 말하도록 지시하셨다.)
그러나 신부님 두 분이 계신곳은 발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그를 또 주뢰로 고문하였다.
굵은 밧줄로 양쪽 넓적다리를 묶고 이리저리 톱질하듯 밧줄을 잡아당겨
살점을 찢어냈다.
그때 아우구스티노는 활활 타는 숯불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 다음날은 나무 도끼로 정강이를 몰인정하게 문질러서 살을 뼈에서 발라내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모든 형벌을 평온한 정신으로 극복하였다.
마침내 불굴의 용사는 신부님들과 함께 의금부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다시 두 차례나 세 차례 끌려나와서 고문을 받은 다음 사형이 선고되었다.
아우구스티노는 49세의 나이로 정 바오로와 함께 칼 아래 순교하였다.
외교인들인 아우구스티노의 아내와 형과 둘째 아기는 유배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