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세 번째 시간

가나의 혼인잔치 (2장 1절 - 12절)

2004년 3월 12일

 

 

목표

가나의 혼인잔치에 나오는 '표징', '때'라는 단어들의 의미를 살펴보고 예수께서 모든 종교들과 온갖 예배의 형태를 어떻게 완성시키시고 대체하시는지 살펴봅니다.

안내

요한 복음의 저자에게는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이 '표징'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표징이란 먼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어떤 것이며 그 자체가 아닌 다른 무엇을 가리키거나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성전 정화가 하나의 표징이 되는 것은 그것이 눈에 보이는 행위이자, 예수께서 새로운 성전이 되게 하는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을 가리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표징이라는 말에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이는 "당신 백성을 위해 행하신 하느님의 행위, 즉 기적과 같은 사건"을 나타냅니다. 공동번역에는 이 표징이란 단어를 기적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전 시대에 하느님께서 보이신 모든 표징들은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행위, 하느님의 구원 능력을 드러내는 가장 완전한 표징을 향해 인도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이었습니다.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가장 완전한 표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로 인해 하느님의 구원 의지가 온전하게 실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있었던 모든 사건들 또한 이 완전한 표징을 향해 나가는데 오늘 공부할 가나의 혼인잔치도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이르는 주님의 영광을 어느 정도 나타내 보이고 있으므로 하나의 표징으로 간주됩니다.  

혼인잔치에 참석하신 예수께서는 잔치에 없어서는 안 될 포두주가 떨어진 사실을 성모님께로부터 전해 듣습니다.  아직은 당신을 드러내실 때가 아니지만 우리의 곤란한 처지를 외면하실 분이 아님을 아시는 성모님께서는 예수께서 당신의 청을 들어주실 것을 믿으시며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그냥 항아리가 아닌 정결의식에 사용하는 빈 물동이를 사용하십니다.  종교 의식에 쓰이는 물동이가 비어 있음은 그 당시 모든 종교가 고갈 상태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심으로 세상의 종교들을 충만케 하시고 가장 좋은 포도주로 변형시키시어 포도주가 혼인잔치에 온 손님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듯이 예수께는 모든 기쁜 소식이 되신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표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표징을 본 제자들은 완전한 표징인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게 됩니다.

해설

2,1: 가나에 혼인잔치가 있었다 - 구약에서 하느님과 당신 백성간의 계약을 혼인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호세 2장; 이사 54,4-5; 예레 2,2)

2,4a: 여인이여 - 공동번역에는 '어머니', 그리고 개신교 개역성경에는 '여자여'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영문으로 보면 여인(Dear woman)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자여'는 너무 심한 번역 같습니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두 번 성모님을 "여인이여"라고 부르고 계신데 여기에 대한 개신교의 해석은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취하시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으므로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마리아는 예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어머니다'라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모님을 공경하는 가톨릭을 공격하는데 있어서 굉장한 호재로 사용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가톨릭의 해석으로는 예수께서 여인이라고 칭하신 것은 창세기 3장 20절에 나오는 그 "여인"의 자격으로서의 성모님을 말한다고 합니다.  즉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로서 모든 종교의 공허함을 아시어 인류를 위해 구세주를 모셔올 여인을 뜻합니다.  

또한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요한 복음에는 성모님의 이름인 '마리아'를 사용하고 있지 않고 단지 "예수의 어머니"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저자가 우리로 하여금 성모님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상징을 보기 원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메시아를 탄생시킨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출현시키기 위하여 선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4b: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 가톨릭의 입장으로 보면 혼란을 가져다주는 부분입니다.  여정에서는 이 부분은 단지 역사적인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라고 해석합니다.  즉 손님으로 온 예수님께서는 포도주가 떨어진 것과 아무 관계가 없음을 말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곤란에 빠진 백성의 사정을 외면하시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이 부분 또한 성모님께 대한 개신교의 공격에 자주 사용되는 구절입니다.  즉 성모님께 '좀 나서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영어로는 "why do you involve me?"입니다.  

2,4c: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 여기서 이 "때"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시기를 의미한다고 보며 인류의 염원이나 예수께서 인류의 구원을 이루실 때는 오직 하느님만이 정해 두고 계심을 뜻한다고 여정은 해석합니다.  

2,5: 그러자 예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일렀다. - 개신교에서 아주 해석하기 곤란해하는 부분입니다.  4절에서 분명 당신의 때가 아니라고 하셨는데도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는 듯이 하인들에게 분부를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성모님을 통해 전구를 하는 이유 또한 이 구절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부탁일지라도 성모님의 전구를 마다하지 못하신다고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2,11: 이렇게 예수께서는 ......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 - 놀랍고 즐거운 가나의 기적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경이로운 효과를 어느 정도 드러내보이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가나의 기적을 보았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을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여정은 아주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가나의 혼인잔치를 단지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하나의 표징으로서 해석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 한다고 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함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이 만료됨을, 물동이가 비어있음은 세상 종교들이 종말을 맞게 됨을 나타내며, 최고급 포도주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고 합니다.  요한이 가나의 혼인잔치로 예수님의 공생활의 시작을 나타낸 것은 예수님의 전해주시는 기쁜 소식은 마치 질 좋은 포도주가 있는 즐거운 혼인잔치와 같음을 나타내주기 위해서라고 여정은 밝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