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다섯 번째 시간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4장 1절 - 4장 4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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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 예수님의 자기 계시와 그에 대한 믿음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짐을 살펴봄.

 

안내:

과월절 동안 예루살렘에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다시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시게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래아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지나쳐야 되는데 오늘 공부할 부분의 배경이 사마리아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이며 또한 예수님께서 참과 거짓의 혼합적인 종교를 대표하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 예수님께서 어떻게 다른 그 종교를 완전한 것으로 대체시키시는지 배우게 됩니다.

 

: 사마리아는 원래 북이스라엘의 수도를 가르치는 지명이었는데 나중에 이 명칭은 수도 주변지역을 가르치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기원 전 722-721년에 아시리아에 의해 북왕국이 멸망하였으며 그 후 이 지역은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이스, 그리고 로마에 의해 차례로 점령당하여 종교적으로도 그들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수 세기 동안 유다 및 예루살렘의 예배와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의 신앙을 발전시켜왔는데 모세 오경만을 성령의 영감을 받는 책으로 주장하며 그들만이 모세의 진정한 추종자로 간주해왔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위대한 최후의 사자, 즉 모세가 시작한 일을 완성시킬 위대한 예언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과의 관계

유다인들이 볼 때 사마리아인들은 여러 민족들에게 영향을 받아 원래의 이스라엘 고유의 신앙이 혼탁해진 상태에 있으면서도 자신들만이 모세의 진정한 추종자로 자부하는 등 참 신앙인 인체하는 불순한 이방인이었습니다.  유다인들 중에서도 특히 경건한 체하는 바리사이파인들은 아무도 사마리아인들과 접촉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킨 사건은 기원 전 128년 요한 히르카노스의 명령에 따라 유다인들이 사마리아의 수도 시켐을 점령하고 그리지 산 성전을 파괴한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부터는 더욱 관계가 악화되어 예수님 시대에는 혈투까지 벌어지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관계를 아시고 착한 사마리아사람이라는 비유를 하시기도 하셨습니다(루가 10:1-37).

오늘 봉독 부분에 나오는 사마리아여인은 상징적으로는 진실된 계시와 이교의 혼합체인 종교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신약시대, 그리고 오늘날의 수많은 집단처럼 사마리아인들은 진실된 계시를 얼마간 지니고 있지만 그것과 아울러 그릇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과 관습들 지닌 종교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우호적이고 온유한 접근 방식은 모든 시대에 있어 제자들이 이러한 종교에 접근하는 방식에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구문 해설

4,6: 야곱의 우물 - 구약에서 하느님 백성을 이루었던 열 두 지파의 아버지로서 야곱이 하몰의 아들에게서 산 밭에 판 우물인데 문서에는 지img2.gif름이 2.7m, 깊이 32m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 측량에 의하면 깊이가 50m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우물은 시카르 지방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건물 지하에 현재까지 거의 원형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시카르 지방이라고 나와있는데 전 페이지의 지도에는 수가로 표기되어 있음.  현재는 아스카르로 불리우며 여기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우물이 있음.  구약성서에는 이 우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음)  여기서 야곱의 우물은 사마리아인들의 생명의 물을 길어 올리는 근원인 율법서(모세오경)를 상징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정)

4,9b: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 그 당시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필요 없는 삽입구로 실제로 많은 필사본에 들어있지 않아 후대의 필사가들이 삽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200주년)

4,14: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 야곱의 우물을 율법에 비유할 때 그 우물물 또한 진정한 물이므로 참된 계시를 말한다 할지라도 우물 속에 갇힌 물이므로 제한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가져다주시는 물은 계시의 완성인 까닭에 샘솟는 물과 같습니다.  율법에 의해 드러난 진리는 얼마간의 생명을 줄 수 있었지만 예수의 가르침은 영원한 생명에로 "솟아오르는 것"임을 뜻한다고 합니다. (여정)  또 다른 대조로는 율법이 사람이 물을 길으러 가는 우물과 같은 것으로 신자의 바깥에 위치하고 있으나 예수께서 제공하시는 완전한 진리는 제자의 속에 있는 셈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주시는 물은 우리 안에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이끄시는 성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7장 37-29 참조)  그러므로 샘솟는 물은 예수께서 드러내 주시는 진리과 그분이 보내 주시는 성령 두 가지를 다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4,21: 사람들이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에 '이 산이다' 또는 '예루살렘이다'하고 굳이 장소를 가리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이다. - 여기서 '이 산'은 그리짐 산으로 사마리아인들은 모세가 이 산에서 율법을 받았다고 확신을 하여 느헤미야 시대에 성전을 세워 예배를 드렸왔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기원전 128년경 유다인들에 의해 이 성전이 파괴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 정화사건에서와 설명한 바와 같이 새로운 성전은 더 이상 특정한 장소가 아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으로 대체될 것이며 예배의 장소 또한 그리짐 산이나 예루살렘 성전 등 어떤 특정한 장소가 아닌 제자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예배의 장소가 될 것임을 언급하신 말씀입니다.

4,22: 구원은 유다인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 여기에 언급된 유다인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하느님께서 구원의 도구로 선택된 민족이 바로 유다민족임을 주장함과 동시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의 육적인 혈통 또한 유다인임을 강조한 구절.  요한 복음에서 유다인은 예수님의 적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4,23: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드려야 한다. - 영문에는 God is Spirit, and those who worship jim must worship in Spirit and truth로 되어있습니다.  앞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이 상징하는 것이 성령과 진리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인 성령과 진리를 진정한 예배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정에서는 이 구절을 자칫 잘못 해석하여 외적이고 형식적인 전례행위가 필요하지 않다는 오류를 범하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즉 23절에서의 영적이라는 것은 성령을 뜻하는 것이지 인간의 영이 아니고 예수님께서도 예배 때 외적인 동작을 취하셨으며(6,11; 17,1) 또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순전한 영적이거나 천사적인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합니다.  

4,35: 너희는 아직도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온다고 하지 않았느냐? ...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이미 다 익어서 추수하게 되었다. -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된다는 뜻은 씨를 뿌린 후 곡식을 거두기까지 보통 네 달이 걸림을 뜻하거나 추수하기에는 아직 이름을 나타내는 속담일 거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추수할 때가 되었다고 하심은 여인을 통한 복음의 속도가 빠름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여정에서는 하느님께서 창조의 시작과 더불어 행해 오신 모든 사랑의 행위들이 예수의 활동 안에서 결실을 맺음을, 즉 인류 구원의 때가 온 것임을 뜻한다고 해석합니다.

4,36: 심는 사람도 거두는 사람도 함께 기뻐하게 될 것이다” -  아버지께서 심으셨고 사람이 되신 아들께서 거두시는데, 두 분 모두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실상 심는 분과 거두는 분은 한 분 이시며 어느 한 쪽의 기쁨은 곧 다른 쪽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4,38 남들이 수고하여 지은 곡식을 거두라고 나는 너희를 보냈다. 수고는 다른 사람이 하였지만 그 수고의 열매는 너희가 거두는 것이다” -     제자들은 장차 당신의 일을 함께 해나갈 사람들이며 하느님의 교회인 동시에 새로운 백성입니다. 그들이 할 일은 다른 사람들이 가꾸어 놓은 들판에서 곡식을 거둬들이는 일이 전부인데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란 인류 역사 속에서 창조주에게 도달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 즉 아브라함, 모세, 다윗, 및 다른 예언자 등을 나타냅니다.

4,42: 우리는 당신의 말만 듣고 믿었지만 이제는 직접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야말로 참으로 구세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 - 예수님을 진정한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충만된 믿음은 예수를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믿음의 신학이 시사됩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예수님과의 만남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질 무렵이 아닌 한 낮의 뜨거운 햇볕 가운데 사람들의 눈을 피해 물을 길러 온 여인은 남들 앞에 자신을 떳떳이 드러낼 수 없는 그런 신세의 여인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유다인들이 이방인으로 치부해 말도 걸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물을 청하십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그녀가 원하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과거를 알아맞혔다는 사실만으로 그 여인은 주님이 구세주일지도 모른다고 여기며 예수님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 우리는 우리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남편을 다섯이나 가졌던, 지금도 합법적인 남편이 아닌 남자와 살고 있는 여인을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자신의 처지에서도 진실된 신앙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 우월하다고 우기고 있는 현재의 수많은 종교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상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여인을 깨우치십니다.  예수님과의 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여인은 예수님을 유다인에서 예언자로, 예언자에서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주님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추수할 때가 다 되었다고 하십니다.

여정에서는 어느 종교이거나 그 안에 있는 참된 모든 것은 주님께 속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느 종교나 무조건 믿기만 하면 되고, 다른 사람이 무엇을 믿건 존중해야 한다는 결론은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종교란 관대한 마음의 표현이 아닌, 가장 참된 것을 추구하며 가장 거룩한 존재를 향해 나가는 것이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를 인정한다는 것은 다른 종교 안에 들어있는 참된 것의 신적 기원을 인정함과 동시에 함께 진리를 추구해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러기에 앞서 우리의 믿음인 가톨릭 신앙이 가장 참되고 거룩한 것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가톨릭 신자들이 갈라진 형제들에게서 발견되는 참된 그리스도교적 보화들을 공동유산에서 물려받은 것으로 알아 기쁜 마음으로 인정하고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음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들과의 일치를 위해 가톨릭 신자들이 실천해야 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이 일치의 목적으로 갈라진 형제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교회 사정으로 그들과 접촉하며, 먼저 그들에게 접근해가야 하겠다."

지난 어느 성경공부 시간에 어떤 분께서 "나는 개신교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이 없으며 신경조차 쓰고 싶지 않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라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같은 믿음을 가졌다는 사람들과도 일치를 이루지 못하며 다른 종교인들과의 일치에 노력을 기울이는게 과연 옳은 일인지, 진정 추수할 때가 된 것인지...  그렇다고 해서 포기를 하고 뒷날로 미룬다면 '앞으로 추수하려면 넉 달이 남았다'고 하는 제자들과 같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