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첫 번째 시간 |
요한 복음 입문 |
2004년 2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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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요한 복음에 들어가기에 앞서 알아두어야 할 요점들을 살펴봅니다.
요한 복음의 형성 공관 복음서 다음에 나오는 요한 복음을 접하게 되면 아주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것은 공관 복음서들과는 달리 하늘나라에 관한 비유들이며, 정의와 원수 사랑, 혼인 등,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찾아 볼 수 없으며 예수께서 베푸신 기적 또한 몇 가지 밖에 기술되지 않는데 그 중에서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거룩한 변모, 성체성사의 제정과 같은 중요한 사건도 빠져있으며 사도와 같은 단어도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 대신 새로운 단어들 (표징, 시간, 영광, 말씀), 그리고 새로운 인물들 (니고데모, 사마리아 여인, 라자로, 사랑받는 제자), 새로운 기적사건(가나의 혼인잔치, 연못가 병자의 치유) 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연대순도 공관복음과는 사뭇 다릅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성전 정화사건으로 요한 복음에서는 이 사건을 첫 부분에 배열합니다. 성서학자들은 요한 복음이 다른 복음들과 이렇듯 차이를 보이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즉 공관 복음서의 저자들은 복음서를 구성함에 있어 자기들의 공동체 (마르코, 마태오, 루가)가 존중하고 있는 전승을 존중하여 그 틀 안에서 복음서를 형성하였습니다. 이렇듯 전승의 틀에 매어 있으므로 작가의 창의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한 복음의 저자는 이러한 전승에 구애됨이 없이 자기만의 전승들을 구성하였습니다. 요한 복음의 저자가 전승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것은 그 당시 이미 존재한 공관 복음서이 예수님의 외적이고 육적인 면을 충분히 서술한 것을 보고 예수님의 영적인 면을 드러내는 복음을 기술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요한 복음이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 면으로 보면 일관성 있고 훌륭한 통일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몇 단계를 거쳐서 기술되었다는 부인할 수 없는 표시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많은 가설이 존재하지만 가장 신빙성 있는 것은 저자가 복음서의 초안을 완성하고 나서 몇 년이 지난 다음에 새로운 자료들을 첨가시키고 계획을 좀 바꾸어서 수정했으며 저자가 죽고 나서 그의 제자들이 몇 대목을 삽입시켜 최종판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21장은 다른 문체로 기록되어 있어서 제자의 작품이라는 것이 아주 뚜렷합니다. 또한 14장 31절에서 예수께서는 "자, 일어나 가자"라는 말씀으로 최후의 만찬석상에서의 가르침을 끝내십니다. 그런데 그 다음 세 장에 걸쳐 예수님의 가르침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 세 장의 가르침에 대한 자료를 추가로 발견한 제자들이 원문이 손상됨 없이 요한 복음에 첨가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추정됩니다.
작성 시기 많은 성서학자들은 요한 복음서를 최초의 복음서인 동시에 최후의 복음서라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로는 요한 복음이 40년대의, 즉 부활 직후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승들을 담고 있으며, 또한 다른 복음서들이 기록된 지 10여 년 가량 지난 뒤인 90년대의 교회의 신앙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최후의 복음서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책이 완성된 시점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요한 복음서는 마지막 복음서가 됩니다. 19세기 초에는 요한 복음서가 요한의 제자들에 의해 2세기 말에 쓰여졌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110년-120년에 출간된 것으로 보이는 요한 복음서의 단편들이 발견됨에 따라 이러한 주장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저자 과연 요한 복음을 누가 작성했는가하는 질문에 대답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이는 저자 자신이 그의 정체를 감추려고 무척 고심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첨가한 21장이 없었더라면 복음서를 토대로 해서 저자를 추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자신을 단지 '사랑 받던 제자'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예수와의 친밀한 관계를 누렸으며 십자가 밑에 서 있었고 예수의 부활을 맨 먼저 믿었으며 호숫가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알아본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순교자로서의 죽음을 맞지 않았던 것이 확실합니다. 11세기 어느 학자 성인은 자신이 천국에 가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사도 요한에게 '당신이 요한 복음서의 저자입니까?'하고 물어보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요한 복음서의 저자를 밝히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한 때 교회(교황청)는 요한 복음서의 저자가 요한이 아니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요한 복음서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강경한 자세를 취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자가 누구인가 밝혀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서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온전히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교회 또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이 지향하는 목표 이미 복음서들이 세 개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위경들을 포함한다면 더 많은 복음서들이 있었지만) 저자가 네 번째 복음서를 작성하고자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ㄱ. 부활 이후에 성령으로 인해 가능하게 된 예수께 대한 분명하고 심오한 진리를 이해시키고 전달하려는 것. 여기서의 심오한 진리란 '예수께서는 사람이 되신 영원하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 따라서 그리스도의 신성(신성)은 복음서 천체의 사상을 지배합니다. (* 요한 복음서는 네 가지 동물 중 신성을 상징하는 독수리로 나타내집니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는데 이는 독자들이 이미 그리스도의 이러한 면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ㄴ. 자신과 교회가 접하고 있는 여러 집단에게 그리스도를 올바로 선포하기 위함. 이미 1세기 말 무렵부터 여러 이단이나 잘못된 가르침 등이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이단 중의 대표적인 것으로 영지주의를 들 수 있는데 요한은 이러한 이단이나 그릇된 가르침을 바로 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요한 복음사가가 택한 방식 복음사가가 위의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첫 번째 한 일은 당시 독자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로써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친숙한 개념들과 표상들도 함께 사용하여 그리스도를 설파하는 일이었습니다. 즉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단지 아람어에서 그리스어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인간이 지니는 의미를 유다인이든, 세례자의 제자들이든, 사마리아인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자기가 상대하는 각 집단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표현했습니다. 또한 저자는 역사상의 사건들을 통해 부활의 결실이자 성령의 선물로 얻어진 영적인 그리스도의 신앙을 전달하기 위해 독자들로 하여금 단순히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초월하도록 이끌어가고 있으며, 세세한 부분들과 연대의 정확성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많은 상징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요한 복음서는 어렵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거론하는 장면들과 사건들의 역사적인 근거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 또한 터무니없는 잘못이라고 합니다. 한 때 요한 복음을 확고한 사실들에 입각하지 않은 시적이고 상징적인 성격의 복음서로 취급되었습니다. 일례로 5장에 등장하는 베짜다 연못가의 다섯 행각은 모세 오경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에 의해 이 연못이 발굴됨에 따라 요한 복음서 또한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것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요한 복음서는 성서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서가 인간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하느님은 아드님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고 예수님은 그분이 누구보다도 사랑하셨던 제자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구성 요한 복음서의 구성은 도입부와 두 개의 본문 부분, 그리고 마침 글의 네 부분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위의 표에서 볼 때, 표징의 책의 내용은 다른 복음서들과 그 사건 배열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주장들이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요한 복음서의 사건 배열의 불일치를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순서의 이유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열쇠가 있다면 그것은 이 복음서가 '표징'들과 그 표징에 대한 해설로 이루어 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표징이란 (세 번째 시간에 자세히 다루게 됨) 예수님의 어떤 행위입니다. 그분의 모든 행위는 모두 심오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표징으로 불리게 됩니다. 즉 요한 복음을 예수님의 표징과 그 표징에 대한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때 연대기적 배열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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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을 마치면서 요한 복음서는 네 번째 복음서, 영적인 복음서, 가장 난해한 복음서, 그리스도 신앙을 가장 잘 드러낸 복음서, 어린 아이가 겨우 들어가 놀 수 있는 욕조이며 동시에 코끼리가 들어가도 남을 연못이며, 몇 시간만에 간단히 읽을 수 있는 책인 동시에 평생을 요한 복음서 하나만 연구해도 끝을 보지 못할 그러한 복음서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러한 요한 복음을 공부해나가고자 합니다. 지난 학기 성서의 개요 시간에 이러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성서를 이해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성서를 말씀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표지로 세례를 받은 (또는 받고자 하는)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믿고자 성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성서 공부를 하는 목적은 성서 안에 주어진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음으로써 하느님을 더욱 더 잘 알게 되고 그럼으로써 더욱 굳센 믿음으로 그리스도 신자로서 신자다운 행동을 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앞으로 요한 복음을 공부해 나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많은 난제들이 있으리라 여겨지지만 이 모든 어려움 주님의 도우심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는 마음을 청합니다. 2004년 2월 13일 |
영지주의란 한마디로 어떤 것을 말한다고 딱 부러지게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사상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아주 간략하게 말한다면 예수님 시대에 유행했던 사조의 하나로 지식이 구원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 말로 ‘그노시스’라고 하는 영지(靈智)는 비밀스러운 가르침으로 영지주의자들은 일정한 정화(淨化) 과정을 거친 뒤, 종교적으로 중대한 진리를 깨닫게 됨으로써, 또는 황홀경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영지주의 세계에서는 물질적 또는 육적 실체들을‘악(惡)’그 자체로 여기고 그러한 것들을 혐오하는데 신은 선하심으로 죽음이나 전쟁 폭력, 악한 것 등을 창조하셨을 리가 없으므로 이러한 것들을 창조한 하급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알비 이단 등이 영지주의에서 출발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