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

김세훈(유스티노)

97년 내가 처음 본 창원대학교의 봄은 아름다웠습니다.
길가에 파릇 파릇 새싹을 틔우는 잔디들이 아름답고, 나무에서 돋아나는 새싹이 아름다웠습니다.
기숙사 앞에 있는 연못의 깨끗한 물이 주변의 나무들과 어울어진 모습 또한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그 물 위에 둥둥 떠 다니는 거위 한 마리와 오리 두 마리 ...
그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신혼 부부도 아름답고, 연못 주변에서 데이트하는 C.C의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시끌 시끌한 강의실과 오가며 만나는 선배들, 가벼운 옷차림으로 돌아 다니는 모든 학생들, 바위투성이인 학교 뒷산까지도 아름다워 보였다.
이런게 봄의 힘일까?

창원대학교에 '천국의 계단'이란 곳이 있다.
봄이면 벚꽃이 계단 전체를 감싸서 천국의 계단을 향해 걸어갈 땐 마치 꽃의 궁전으로 걸어 들어 가는 느낌이다.
97년 내가 맨 처음 천국의 계단을 봤을 때 벚꽃이 그 아름다움을 최고로 뽑낼 때였다.
친구와 그 길을 걸으며 내일 사진기 들고와서 사진 한 장 찍자며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비록 못난 얼굴이지만 배경 때문에 멋진 사진이 될꺼다.'하고 생각했다.

다음날 친구가 사진기를 가져오지 않은 바람에 다음에 찍기로 하고 그냥 넘어갔고 그늘에 앉아서 놀고, 다음날, 금요일부터는 수업이 없었는데 그 친구가 "행님, 사진 찍으러 학교 가입시더." 하는 말을 외면하고 집에서 놀고 있었다.
다음날인 토요일 저녁부터 바람이 불면서 비가 내렸다.
비가 오는 바람에 일요일도 꼼짝 않고 집에 있다가 월요일에 학교에 가을 땐 천국의 계단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 화려하던 벚꽃이 떨어져서 계단에 지저분하게 널려있고 나무엔 듬성듬성 꽃잎이 매달려서 계단에 떨어진 꽃잎과 함께 어우러져 그 추함을 더할 뿐이었습니다.

그 계단을 보는 순간 며칠동안 집에서 놀면서도 사진 찍으로 오지 않고 미뤄 왔는지 후회스러웠다. 아름다운 것은 쉽게 망가지고 금방 사그러든다는 것을 모르지도 않았는데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잠깐 곁에 있다가 쉽게 떠나버린다는 것을 모르지도 않았는데, 난 그 벚꽃의 계단이 언제까지고 그대로 그 아름다움을 간직할 줄 알고 집에서 나오는 것이 귀찮아서 그 짧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이런 사소한 일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런 경우가 많이 있을 것이다.
꼭 해야 하는 일,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 데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은 못하고 만다.
진정 가슴아픈 기억으로 남는 것은 행하다가 실패한 일들이 아니라 시자개보지도 못한 일들에 대한 기억들일 것이다.

주변에 용서를 구할 사람이 있으면 지금 용서를 구하고, 사랑한다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지금 가서 그 말을 하고 우리가 가진 걸 나눠줄 수 있을 때 어려운 사람을 돕고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과 힘이 있을 때 다른 누군가를 위해 봉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영 못할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서툴지만 지금 행하고 조금은 모자라지만 지금 나눠야 할 것입니다.
이제 벚 꽃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 봄에는 꼭 사진을 찍으러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