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논성당 및 홍로성당 시기
(1899~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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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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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진 내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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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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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초대주임 김원영 신부(1899년 11월 서귀포에 한논공소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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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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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2대 주임 무세(文濟萬) 신부(사진은 2대 대구교구장때의 주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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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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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함대장이 촬영한 신축교안의 참상, 신자들의 시신이 관덕정 광장에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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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교안 때 공방전을 벌였던 제주성의 옛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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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최초 사제관(1989년 피네와 김원영신부가 유배자 김경하(유배前
승지)의 도움으로 집 매매를 꺼리는 가운데 어렵게 살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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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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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3대 주임 타케(嚴宅基) 신부(신축교안 중 파괴된 한논에서 성당을
홍로로 이전하고, 식물학자로서 제주도에 신품종 감귤을 보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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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경(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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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교안으로 폐허가 된 제주성당 사제관 앞에서의 두신부[ 라크루(구마실)
신부 (제주중앙 성당 2대
주임)와 엄타케(프랑스 외방전교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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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경(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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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교안을 겪은 신자들이 제주성당 앞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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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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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실 신부가 설립한 신성여학교 학생들의 모습(제주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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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페네 신부가 매입한 사제관에서 구신부와 엄신부가 자신들이 만들어
준 나무공으로 놀이를 하는 아동들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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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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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처음 파견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를 맞이하는 엄타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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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의
두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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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여학교 학생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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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여학교 수녀선생님과 학생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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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여학교 학생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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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여학교 수녀선생님과 학생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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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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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화
플로리아노주교(1911년 조선교구에서 대구교구 소속으로 분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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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교의 제주도 순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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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교의 제주도 순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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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교의 제주도 순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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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교의 제주도 순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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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는 선교사(사제와) 총을 들고 호위하는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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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의 제주의 풍물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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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의 제주의 풍물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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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의 제주의 풍물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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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성당에 방문하여 동료 신부와 신자들과 기념 촬영한 엄타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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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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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실 신부와 신성여학교 학생들(구신부의 송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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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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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4대
주임 김승연(아우스티노) 신부(사진은 노년의 모습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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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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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5대
주임 이경만(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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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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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6대
주임 이필경(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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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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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7대
주임 최덕홍(요한) 신부(1949년 6대 대구교구장으로 주교
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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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홍
신부님과 동료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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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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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8대
주임 허일록(타대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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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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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9대
주임 김창현(바오로) 신부(1961년 광주교구 부주교, 한국인
첫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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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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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대
홍로성당의 두 신부님과 본당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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