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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관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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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관덕정
  황사평의 묘
정난주마리아의 묘
김대건신부 제주표착지
 

제주 관덕정

[ 소 재 지 ]  제주시 삼도2동 중앙로타리 서측

  dia_pink.gif 길 안내

  제주시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찾기가 매우 쉽다. 제주공항에서는 용문로, 서문로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관덕로로 접어 들면 대형 교통표지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서귀포, 중문방향에서 5.16도로를 넘어 계속 직진하면 중앙로에서 우회전 표시의 교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부근에 중앙성당이 있으며, 중앙성당의 고딕형식의 첨탑으로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 제주 관덕정은 세조 30년에 창건된 무도정신을 가르치던 도장(연무장)이었다.   

 이러한 장소가 천주교의 성지가 된 것은, 조선 땅에 100년동안의 천주교 혹독한 박해시기를 이겨내고, 복음에 서광이 비쳐지고 제주도에 막 복음의 씨앗이 움트는 시기인 1901년에 발생한 신축교안에 기인하고 있다.

 2. 중앙정부(왕조)의 새로운 조세정책과 이를 집행하기 위해 서울에서 파견된 봉세관의 세폐에 불만을 가진 백성과, 제주지역의 토속신앙에 맞서 공세적으로 선교활동을 펴던 천주교 세력이 우발적인 사건으로 충돌하여으며,

지방관리와 일본인 밀어업자들과 결탁으로 유도로 민란으로 확대되어, 과정에서 무고한 천주교인들이 700여명이나 살해 당하는 참사가 발생하였다.

신축교안 초기 제주도 남부지역에서 발생한 민란은 수차례 교우들과 민군이 충돌하여, 제주읍내 교회(현 중앙성당)로 피신하여 제주성문을 닫고, 민군과 충돌하였다.

성문 밖은 신자들을 색출하여 살해하는 민군에 성문을 열어 지방관, 라크루 신부와 민군의 장두는 타협을 원하였으나, 흥분한 민군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1901년 5월 28일 제주성내로 진입한 민군은 천주교인들을 색출하여 관덕정 앞에 끌고와 몽둥이로 때려 죽이는 참사가 1901년 6월 8일까지 계속되었다.

 3. 그렇게 되어 관덕정에서 죽은 사람이 170여명, 교난을 통해 희생된 사람은 모두 9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제주지역의 선교를 맡은 라크루 신부가 프랑스 함대의 지원을 요청하여 6월 9일 제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몽둥이로 타살된 시체들이 관덕정에 온통 겹겹이 쌓여 있었으며, 당시 프랑스 함대장이 찍은 사진이 그 때은 참상을 전하고 있다.

1903년 4월 구마슬신부의 노력으로 피살교인의 무연고 시신이 수습되어 황사평 묘에 안장되었다. 아쉬운 점은 관덕정에서 가톨릭의 성지임을 나타내는 표식이 없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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