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날 가톨릭신학은 교회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신자들이 지체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신비체'로 성령의 이끄심 아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운영되는 공동체라고 정의한다. 

교회사가들은 교회를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신적(神的)인 동시에 인적(人的)인 실재로 이해하면서 교회는 신인양성(神人兩性)의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교회는 신적 성격 때문에 어떠한 잘못도 없이 신성하지만 인적 성격 때문에 교회 안에는 잘못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것은 교회가 인간적 공과(功過)를 지니고 행동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신비로운 방법으로 이끌어지는 영적 교회가 아니라 인간의 조건과 환경에 맞게 운영되는 교회를 원하신다.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인류구원사업이 인간의 협조 아래 성취될 수 있도록 섭리하신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지상천국 즉 교회의 미래 운명을 자유의지를 지닌 사람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에 교회의 잘못이 발견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과오는 신자로부터 교회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성원들이 인간적 동기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여 발생한다. 

어쨋든 역사적 과오는 그것이 인간 개인의 고의적 잘못을 내포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 결과는 개인적 잘못보다 더 비극적이고 과중한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밭에 비유하시면서 좋은 씨가 뿌려진 밭에 원수가 몰래 뿌려 자라난 가라지는 주인이 그냥 두었다가 추수 때에 뽑아 태워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마태 13,24-30.36-43) 

이렇게 성서와 신학에 근거한 이론은 초대교회의 실천에 의해 확증되고 있다. 2-3세기의 광신적 금욕주의자들과 윤리적 엄격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죄악에 떨어지지 않은 순수파(카타로이)라고 자칭하면서 죄인들을 엄격하게 배제하고 윤리적으로 완전한 이들이 모인 '성인의 교회'를 내세움으로써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역사 안에서 과오를 발견할 때 지나치게 놀라기보다는 이상(理想)의 교회와 현실의 교회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깨닫는 동시에 역사적 반성을 이끌어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멀어지며 속화된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그 내부에서 개혁의 외침과 쇄신의 움직임이 있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주창은 교회사의 공리(公理)이다. 

교회사가들은 역사적 과오를 포함하여 교회의 역사적 사실을 진실하게 알림으로써 호교적 임무를 수행한다. 교회의 옛 모습에 대한 과장, 왜곡, 은폐, 변조는 교회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어설픈 호교론에 지나지 않는다. 

교황 비오 12세(재위:1939-1958)는 교회사를 다룰 때 비판적 자세나 호교적 태도에 집착하지 말고 오직 교회 생활의 정확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역사는 하나의 마주침이다. 그러나 타자(他者)와의 참된 만남이 실현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16세기에 분열된 그리스도교계의 일치운동이 20세기초 이후로 계속 진행되어 오고 있으나 오늘날까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타자는 알려지지 않은 존재이다. 만일 누가 이러한 타자를 실제의 모습으로 만나기를 원한다면 그를 자기의 동료로서 동등한 위치에 올려 놓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역사주체와 역사대상 사이에 친교가 이루어져야 한다. 

성(聖) 아우구스티노는 알려지지 않은 과거 사건이나 인물이 함부로 취급당하거나 비판받아서는 안되며 인간의 과거는 우애적 친교를 통해서 인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사람들은 역사 대상에 대하여 사랑, 수용성, 존중, 관용, 동정과 같은 마음자세, 즉 역사적 덕목을 지니고 실천해야 과거의 사건과 인물을 실제의 모습 그대로 만나게 되며 어느 정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품성을 지닌 사람은 비록 인간의 과거에 대한 참된 지식을 체득한다는 것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주관적 역사관을 배격 한다. 

자기 중심의 역사관은 대상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추구하려는 열의를 갖추지 못한 자세이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서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얻는 목적이 실현되기가 어렵지만 역사적 덕행은 이러한 목적을 성취시킬 수 있다. 따라서 덕성을 무시하는 사람은 역사 대상에 대한 실상을 올바르게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역사적 덕행인 사랑의 자세를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중용을 지키지 못하고 조절되지 못한다면 이는 맹목적 사랑으로서 역사진리를 받아들일 마음가짐이 없는 것이다. 

특히 종교인이 자기 종교에 대한 과도한 애착심을 자제하지 못하는 데서 편파적 견해와 관념이 발생한다. 이러한 맹목적 사랑은 비판적 자세를 약하게 하며 더욱이 다른 종교에 대한 선입견이 반감과 증오에서 나온다면 역사 대상을 접근할 때에 침착하고도 객관적 태도를 견지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실례는 동방교회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포시우스에 관한 연구에서 가톨릭교회에 대한 지나친 애착심과 여기에서 나오는 적의로 가득찬 가톨릭 역사가들의 편견이 수세기 동안 포시우스의 허상을 남겨 놓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실증주의 학파들은 비판자세를 역사연구의 첫 덕목으로 꼽고 있다. 그들은 먼저 의심을 갖고서 역사의 문헌과 증언에 대해 접근할 것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방법론적 불신은 모든 학문의 출발점으로 역사학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비판적 정신과 자세가 필요하지만 비판적 방법을 일방적으로 지나치게 주장하고 사랑이 결여된 사고방식과 자세로 역사대상에 접근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비판정신이 심문하는 태도로 나타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옛 교회 모습에 접근할 때에는 존중과 비판의 감성을 함께 지니고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종교인은 인간적 한계성 때문에 주관적 역사관, 자기 종교에 대한 맹목적 사랑, 다른 종교에 대한 편견, 중용을 잃은 비판적 자세와 같은 유혹을 극복하고 교회의 사건과 인물을 다룰 때에는 발생 당시의 모습 그대로 만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에 교회는 신앙의 신비체로서 경우에 따라서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는 신앙에 의해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충분한 신학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교회에 관계되는 역사대상을 깊이 파악할 수 없으며 참된 지식을 제시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그가 몸담고 있는 교파의 고유한 신학적 관점에서 교회의 발전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이렇게 신앙에 근거한 역사관은 자기 교회에 대한 긍정적 표현과 다른 교회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내릴 수 있게 한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은 투쟁적 정신에서 다른 교회에 관련된 역사 사실을 왜곡되게 서술할 수 있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종교개혁시대에 가톨릭저술가들과 프로테스탄트 저술가들은 투쟁정신을 갖고 서로 비난하였다. 이 시대의 저자들은 단순히 반대파의 사상을 반박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인신공격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던 에라스무스는 논쟁적 저서들 안에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결핍되었다고 한탄하였다. 

지난날 루터에 대한 가톨릭의 부정적 이해는 이러한 투쟁정신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이에따라 전개되고 있는 교회일치운동은 과거 가톨릭교회사가들이 묘사한 부정적 루터 모습은 참다운 이해를 저해하는 투쟁정신에서 나온 결과이기 때문에 진정한 모습이 아니며 가톨릭학자들이 자기 교회에 대한 맹목적 사랑으로 공정한 비판과 역사적 덕행이 결여된 견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가톨릭교회의 긍정적 루터 해석이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객관적 역사이해에 바탕을 두고 개선되고 있다. 

이러한 객관적 재조명은 가톨릭교회에 관련된 역사사실이 서술되는 데에도 적용되었으면 한다. 가톨릭교회에 관련된 역사 사건과 역사인물을 묘사하기 전에 가톨릭교회의 신학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갖추게 될 때에 역사진리를 담고 있는 올바른 역사서술이 가능하다.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화되는 것이 최근에 교육기관의 교재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바람일 것이다. 

김성태(신부, 가톨릭대 교수, 가톨릭교리신학원장) 
 

▲위로

◀이전으로